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조치에 대해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제왕적 조치"라고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공약 후퇴"를 우려하고 있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서든, 아니면 로드맵을 통해서든, 탈핵 에너지전환을 위한 흐름은 지속되어야 한다. 이 전환은 단순히 에너지원의 변화만을 의미해서는 곤란하다. 반상태적, 비인간적 노동체제의 개혁과 같이 "사회의 더 큰 변화와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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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탈핵 선언'이라는 원자력계의 '헛소리'
[초록發光] 오히려 공약 후퇴를 우려한다
에너지 백년대계를 걱정한다는 대학 교수들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냈다. 7월 5일, 전국 60개 대학 417명의 "책임성있는 에너지 정책 수립을 촉구하는 교수"들은 탈핵 정책의 추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 달 초 230명의 교수 선언에 이은 두 번째 성명서 발표다. 이들은 탈핵 정책이 추진되면 더이상 값싸게 전기를 이용할 수 없다고 말하며 핵발전소(원전)를 통한 "보편적 전력복지"를 유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전력수급 불안정, 산업경쟁력 약화, 에너지 안보 위기 등 익숙한 탈핵 비판 논거도 빼놓지 않았다. 대통령의 선언으로 탈핵을 추진하는 것은 "제왕적 조치"라는 말까지 나왔다.
제왕적 조치? 원자력계의 반발로 인한 대선 공약 후퇴
원자력공학 및 연관 분야의 공대 교수들이 주축이 된 "책임성있는 에너지 정책 수립을 촉구하는 교수"들의 행동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인 자신들이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탈원전 정책의 졸속 추진"으로 인해 "값싼 전기를 통해 국민에게 보편적 전력 복지를 제공해 온 원자력 산업을 말살"시키는 "제왕적 조치"를 어떻게 가만히 두고 볼 수만 있겠는가?
그러나 너무나 안타깝다. 원전의 환경적, 사회적 비용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미래세대로 책임을 전가하는 문제를 외면한 채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을 무책임한 행동으로 몰아세우는 낡은 구별짓기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탈핵이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터, 원자력계의 기득권 지키기가 아니라면 그동안 원전 확대 정책이 야기해 온 "무책임성"에 대한 성찰부터 이뤄져야했다. 그리고 제왕적 조치라 말하기에 앞서 수십년간 유지되어온 원자력계의 폐쇄적인 의사결정에 대해 반성해야했다.
현재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탈핵 정책은 제왕적 조치가 아니다. 오히려 원자력계의 저항으로 인해 대선공약이 계속 후퇴하고 있는 상황이다. 알다시피, 문재인 대통령은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 "신고리 4호기 및 신한울(신울진) 1, 2호기 건설중단 후 사회적 합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었다. 탈핵 공약은 대선 기간 동안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후보 선택의 주요 기준으로 언급되기도 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시민단체 및 지역사회와 관련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고리 1호기 폐로를 기점으로 탈핵선언을 할 것이라는 예상은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법했다. 그러나 탈핵 선언을 계기로 원자력계의 반발이 조직화되고 상당수의 언론이 동조하면서 대선 공약은 계속 후퇴하고 있다. 이미 신고리 4호기, 신울진 1, 2호기에 대한 이야기는 쏙 들어갔고, 신고리 5, 6호기마저 건설중단 공약을 실행하는 대신 3개월 시한의 공론화위원회로 공을 넘겼다. 약속했던 탈핵 로드맵 수립을 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이것이 제왕적 조치라면 전문가의 의견을 들으라는 요구는 폐쇄적인 원자력계에게 다시 의사결정권을 넘겨달라는 말인가? 정부의 정치적 책임성을 무력화시킬 만큼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는 것이 에너지 정책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는 말인가?
* 사진: 탈핵신문(2014.9.1.)
현상유지가 아니라 더 나은 길을 이야기하자
원자력계가 강조하는 에너지 복지, 에너지 안보, 전력수급의 안정성 등은 탈핵·에너지 전환의 과정에서 당연히 고려되어야한다. 재생에너지의 변동성 문제는 이미 탈핵진영 내에서도 적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다. 탈핵·에너지 전환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라면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하고, 또 피할 수도 없다. 그러나 "책임성있는 에너지 정책 수립을 촉구하는 교수"들은 탈핵·에너지 전환을 계속 미래의 일로 유예시키려한다. 탈핵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아직 재생가능에너지는 아니다"는 신념 덕분에 주요 산업국가 중 재생에너지 비중이 가장 낮은 국가가 된 것이 직시해야할 한국의 현재 모습이다. 앞으로 수십년 간에 걸쳐 새로운 에너지 복지, 에너지 안보, 전력공급 및 소비 방식을 모색하는 일을 이제야 시작한다는 데 늦어도 너무 늦었다. 신고리 4호기, 신한울 1, 2호기가 지어지는 이상 설계수명을 기준으로 할 때 탈핵까지 앞으로 최소한 60년 넘게 걸린다. 현 정부의 계획은 대략 "2060년대"까지 왜곡된 가격을 "정상화"하고 환경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나은 에너지 공급과 소비의 방식을 찾아가자는 지극히 보수적인 계획이다. 앞으로 수십년 간 진행될 탈핵의 과정에서 원자력계가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폐로 및 안전규제기술 개발,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 방안 수립 등 할 일은 산적해있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은폐된 비용에 대한 충분한 고려없이 "원전은 싸다"는 가정 아래 원전 확대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탈핵과 원전 확대·유지의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 탈핵·에너지 전환을 위한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것이다.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을 조속히 확정짓고 탈핵·에너지 전환에 어떤 가치를 담아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하는 것이 더 미래지향적이다. 탈핵·에너지 전환을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생각보다 많다. 단적으로, 원자력계가 심각하게 우려하는 전력공급의 안정성만 해도 그렇다.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원전을 짓지 않으면 곧 블랙아웃이 일어날 것처럼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지만 지나친 우려에 가깝다. 오히려 전력수급기본계획의 과잉 전력수요예측으로 인해 당분간 전력설비 예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것을 걱정해야할 상황이다. 나아가 지금도 주요 선진국보다 높은 1인당 전력소비량을 계속 늘려가겠다는 계획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 되물어야한다.
탈핵·에너지 전환과 장시간 노동으로부터의 탈출, 함께할 수는 없는가?
한발 더 나아가서 여름철과 겨울철 냉·난방 전력수요가 집중되는 며칠을 위해서 대규모의 전력설비를 계속 늘려야하는지 따져볼 여지도 있다. 반짝 전력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꼭 값비싼 설비를 갖춰야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최대 전력수요가 예상되는 시기에 휴가를 더 길게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여름철 최대 전력수요는 7월 말에서 8월 초·중순 오후 3시 전후에 집중된다. 전력수급비상 관련 기사가 집중되는 것도 이 시기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8월 첫주에는 관련 기사가 일시적으로 자취를 감춘다. 이유는 간단하다. 8월 첫주에 여름휴가가 몰려있고, 여름휴가기간 동안 최대 전력수요가 10% 이상 하락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최대 전력수요가 하락하는 만큼 전력예비율이 높아지니 자연스레 전력수급비상을 우려할 일이 사라진다. 대규모 설비를 늘리는 대신 휴가를 늘리는 것을 대안으로 검토해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OECD 통계를 들춰볼 것도 없이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장시간 노동체제의 폐해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야근이 일상화되어 있고,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휴가를 사용하는 것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대통령이 월요일에 연차휴가를 하루 사용한 것이,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휴가를 다 쓰겠다는 것이 이슈가 되는 상황이다. 그나마 희망섞인 소식이라면 최근 휴가권 보장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친 김에 현재 4~5일 안팎인 여름휴가를 2주 이상의 연속적인여름휴가로 확대하고, 보편적인 휴가 문화로 정착될 수 있게끔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어떨까? 짧은 여름휴가 시기를 산업체별로 조정해서 전력수요변화에 대응하느니 휴가권을 확대·보장하고 대규모 설비증설의 필요성을 줄이는 것이다.
벌써 산업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책임성있는 에너지 정책 수립을 촉구하는 교수"들의 목소리와 겹쳐 들리는 것도 같다. 대한민국의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위험한 일을 왜 서둘러 추진하려고 하냐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당분간은 현상 유지를 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내게는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쉴 새없이 일하는 것은 행복과 거리가 멀다고, 한곳에 10기 이상 원전을 짓고 불안에 떠느니 익숙하진 않지만 안전한 길을 선택하겠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문재인 정부가 "책임성"을 운운하는 원자력계에 휘둘리지 말고 담대하게, 최소한 공약으로 내건 것만큼은 실행하는 정치적 책임을 다하길 기대한다. 탈핵·에너지 전환을 단순히 에너지원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 사회의 더 큰 변화와 연결시킨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 홍덕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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