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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발전/미니태양광

집에 태양전지 설치하니 에너지농부된 듯 뿌듯했다

by 경남햇발 2017. 4. 25.

[펌 글] 한겨레신문 2017.04.25.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792092.html

 

집에 태양전지 설치하니 에너지농부된 듯 뿌듯했다

등록 :2017-04-25 08:00수정 :2017-04-25 08:31

지난 12일 아파트 베란다에 미니 태양광발전기를 달았다. 장마철이나 미세먼지 공습 기간이 아니면 냉장고 하나 돌릴 만한 전력은 너끈히 생산해내리라. 태양전지판을 만져보며 오래도록 잊었던 ‘산출의 기쁨’을 느꼈다. 어릴 적 아침녁에 닭장 속 둥지에서 따뜻한 달걀을 꺼낼 때나 이른 새벽 밤나무 밑에서 알밤을 주을 때면 묘한 충족감이 차 올랐다. 한동안 아침마다 전력계기판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길 것 같다. 글 이근영 선임기자,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 12일 아파트 베란다에 미니 태양광발전기를 달았다. 장마철이나 미세먼지 공습 기간이 아니면 냉장고 하나 돌릴 만한 전력은 너끈히 생산해내리라. 태양전지판을 만져보며 오래도록 잊었던 ‘산출의 기쁨’을 느꼈다. 어릴 적 아침녁에 닭장 속 둥지에서 따뜻한 달걀을 꺼낼 때나 이른 새벽 밤나무 밑에서 알밤을 주을 때면 묘한 충족감이 차 올랐다. 한동안 아침마다 전력계기판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길 것 같다. 글 이근영 선임기자,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기자가 그린 대선여지도 ④ 지속가능에너지
서울시 비용지원 '미니 태양전지'
자기부담금 9만5천원 내고 설치
냉장고 1대 돌리는 에너지 생산

전기제품 다 꺼도 돌던 계량기
눈금 멈추는 순간 온몸에 전율
전기요금 한달 6천~1만원 절약

내친김에 ‘에코마일리지’ 가입
검침량 줄이면 관리비 등 혜택
“지속가능한 발전은 환경친화적 에너지 안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안심하고 경제활동이 이뤄지도록 에너지 확보에도 만전을 기하면서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환경친화적 에너지 보급 확대에도 힘쓰겠습니다.”

 

18대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펴낸 공약집에 나온 에너지 부문 공약이다. 노후 원전의 연장운전 허가를 엄격히 제한하고, 추가로 계획하고 있는 원전은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 아래 재검토하며, 원전관리 비리 재발을 방지한다는 구체적 정책이 제시됐다.

쌍수를 든 환영까지는 아니어도 이명박 정부의 ‘녹색 삽질’에 진저리가 난 상태여서 박근혜 후보의 공약은 “민심의 흐름을 거스르기야 하겠어”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 일본 후쿠시마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터였다. “더 이상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원전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재생에너지 산업의 확대로 에너지 독립을 구상하겠습니다.”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공약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1년도 채 안 돼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2014년 1월 박근혜 정부는 원전을 당시 23기에서 2035년까지 16기를 추가해 최소 39기까지 늘리는 내용의 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통과시켰다. ‘안전국가’ 대신 ‘원전국가’를 택한 것이다. 품질 기준에 미달하는 부품들이 시험 성적서가 위조돼 납품되는 원전부품 비리가 터졌고, 월성 1호기 수명 연장을 강행했다가 법원에 의해 ‘불법 행위’로 판결받았다. 19대 대통령 선거 주요 후보들은 원전 확대를 중단한다는 지점에서는 합일점에 이르고 있다. 다시 한번 희망을 품어도 될까?

멈췄다. 난만히 묏등마다 진달래 흐드러지던 무렵 모꼬지 가는 길 버스 안에서 그 아이의 커다란 눈과 마주쳤을 때 멎었던 숨처럼, 도서관 4층 난간에서 아크로폴리스 차디찬 바닥으로 꽃잎처럼 스스로 흩날리던 학우의 몸부림에 멈췄던 심장처럼, 나의 동공은 전력계량기 눈금에 꽂혀 멈췄다. 시시포스의 저주의 바위처럼 멈추지 않고 영원히 돌아갈 것 같던 계량기 원판이 얼어붙은 듯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때 그 시절의 격동까지는 아니어도, 순간 잔잔한 전율이 몸을 스쳤다. 한 숨을 들이쉴 즈음 앗! 나의 동공은 이제는 확장 모드로 바뀌었다. 계량기 원판이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열이틀 전 우리 집에는 발전소가 하나 생겼다. 어느 날 퇴근 때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미니 태양광발전소 설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여느 때면 시큰둥 지나쳤겠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외국에 떨어져 살던 아내가 조만간 돌아온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냉장고 하나로는 모자랄 것이 뻔하다. 커피기기며 믹서기, 제빵도구에 이르기까지 전기로 작동하는 각종 요리기구도 함께 돌아올 것이다. 지난해에는 폭염을 몸으로 때웠지만 올해는 에어컨도 하나 장만해야 할지 모른다.

며칠 뒤 일찌감치 혼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관리사무소 회의실에서 열린 태양광발전소 설명회에 가보니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찼다. 서울시 태양전지 보급을 대행하는 녹색드림협동조합 조중래 이사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주민들로부터 질문이 쏟아졌다. “바람이나 지진으로 떨어질 염려는 없나요?” “이사 갈 때 가져갈 수 있나요?” “먼지가 쌓이거나 새똥이 묻으면 어떻게 하나요?” 명색이 기자인데 좀 멋진 질문이 없을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기실 내가 제일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한달에 얼마쯤 전기요금이 절약된다는 거요?” 조 이사의 설명은 이랬다. 태양전지 소비자가가 61만원인데 서울시가 41만5천원을, 구청이 10만원을 지원해 자부담은 9만5천원이다. 260W짜리 태양전지가 생산하는 한달 전력량이면 양문 냉장고 1대 정도 돌리는 전기값이 절약된다. 한달에 6천~1만원가량 줄어들 것이다. 1년이면 본전을 뽑는다는 얘기다. 빙고.

집에는 욕심을 부려 310W짜리 태양전지를 설치했다. ‘지금은 월 사용량이 누진요금제 첫번째 구간인 200㎾h 미만이지만 아내가 돌아오면 분명 두번째 구간으로 넘어갈 것이다. 월 사용량이 400㎾h 이상으로 세번째 구간에 들어가면 단위요금이 1.5배로 늘어나니, 아내가 각종 요리기구를 돌려도 세번째 누진구간으로 넘어가지만 않아도 선방하는 거다’ 하는 꿍꿍이다. 설치 다음날 베란다에 달린 태양전지판을 들여다보니 인버터 액정에 당일 최대 출력량 277W, 당일 누적출력량 1379Wh가 기록됐다. 인버터는 태양전지가 생산하는 직류전기를 교류로 바꿔주는 장치다. 일주일 뒤 적산전력량(태양전지가 발전을 시작한 이후 총발전량)은 7㎾h까지 수치가 올라갔다. 하루 1㎾h, 한달이면 30㎾h. 우리 집 양문형 냉장고(700리터짜리)의 월간 소비전력량이 34.1㎾h이니 냉장고는 충분히 돌릴 수 있겠다 싶었다. 내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직업근성을 살려 전력계량기를 보러 갔다. 모든 전기기기를 꺼놓아도 콘센트 때문에 느리지만 조금씩 돌아가던 계량기 원판이 마치 고장이라도 난 듯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해가 쨍쨍 나는 때면 계량기 원판이 역주행도 서슴지 않았다. 월급쟁이에 소비자일 뿐인 내가 ‘에너지 농부’가 된 것 같은 뿌듯함에 혼자 히죽였다. 일순 어린 시절 ‘방귀 곤로’로 지은 밥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양계를 하던 우리 집에서 어느 날 아버지가 땅을 파 구덩이를 만들고 비닐을 깔더니 닭똥을 붓고 펌프로 물을 채우라 하셨다. 며칠 뒤 빵빵해진 비닐 주머니에 호스를 연결하고 다른 쪽 끝에 구멍 뚫린 주물 가스버너를 연결한 뒤 성냥불을 대자 파란 불꽃이 솟았다. 불꽃이 꺼지면 방귀 냄새(메탄가스)가 났다. 물론 방귀가스로 지은 밥에서는 구수한 밥내만 났다. 닭똥이 불을 만들다니, 처음 접한 신재생에너지였다.

내친김에 서울시 에코마일리지에 191만9326번째 회원으로 가입했다.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에 물어보니 세대 기준으로 97만950가구가 가입해 약 10%인 9만7142가구가 인센티브(마일리지)를 받았다 한다. 시에서는 에너지 사용량(검침 기준)이 이전 6개월보다 줄어들면 마일리지를 지급한다. 마일리지로는 친환경 제품을 살 수 있고 아파트 관리비나 지방세 납부도 가능하다. 우리 집 발전소가 열심히 일을 하면 내년쯤엔 인센티브 혜택을 받을 수 있으리라. 서울시가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을 시작한 2012년부터 지난달 말까지 2만6026가구에 미니 태양광발전기가 설치돼 용량이 21.587㎿에 이른다. 나도 이제 지속가능 에너지의 최전선에 섰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전환은 녹록하지 않다. 2016년 서울시 아파트 세대는 152만가구다. 모든 세대에 우리 집처럼 310W짜리 태양전지를 단다면 용량이 471㎿가 된다. 원전 1기의 절반도 안 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회의실에서 미니 태양광발전소 주민 설명회 하는 모습. 사진 이근영 기자
아파트 관리사무소 회의실에서 미니 태양광발전소 주민 설명회 하는 모습. 사진 이근영 기자
우리나라 전체 전력량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5~6%에 불과하다. 그중 태양광은 10.7%뿐이다. 대선 주요 후보들이 모두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이른 시일 안에 20%대로 높이겠다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실현 가능성엔 ‘글쎄요’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모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전체 전력량의 20%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40%까지 올리겠다는 가장 높은 목표를 내놓았다. ‘신재생에너지 쪽으로 에너지 정책을 바꿀 것’이라고 언급하는 데 그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빼면, 대선 후보들의 이런 태도는 현재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비중 목표(제4차 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가 2035년까지 13.4%인 것에 견줘 가히 ‘에너지 혁명’에 가깝다. 하지만 20%라는 목표치는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도 아니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등은 2020년까지 작게는 30%에서 60%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프랑스·미국(캘리포니아·뉴욕) 등의 목표도 2030년까지 40~50%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지만 나처럼 아파트에서 열심히 ‘에너지 농사’를 지어야 백년하청일 게 뻔하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2030년 20%에 이르려면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이 65GW 정도 돼야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4.5GW였다. 지난 15년 동안 쌓아온 게 이 정도다. 앞으로 15년 동안 60GW를 늘린다? 이런 일에 기적이라는 말을 쓸 것이다. 지난 14일 은행회관에서 열린 에너지시민연대·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주관의 정당 초청 에너지 정책 전환 대토론회에서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은 “2~3년 전만 해도 내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높여야 한다고 얘기하면 희망사항은 될지언정 국가의 계획이랄 수 있겠느냐, 비현실적인 목표라는 지적이 잇따랐는데 이제는 내가 뒤떨어진 사람이 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근영 기자 아파트에서 기사들이 태양전지를 설치하는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근영 기자 아파트에서 기사들이 태양전지를 설치하는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그래도 희망은 이뤄질 수 있기에 허망과 다르지 않나 싶다. ‘에너지 농사꾼’이 됐다는 소식을 고등학교 동아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하자 관심이 쏟아졌다. 얼마냐, 너무 크지 않냐, 경기도에도 지원이 있냐 등등. 시골에 거처를 둔 선배는 다음날 당장 면사무소로 지원 여부를 알아보러 간다 했다. 보수에서 진보까지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모임이어서 뜨거운 관심은 원전·화석연료 대체와 지속가능 에너지라는 담론보다는 나의 태양전지 설치 동기와 마찬가지로 전기요금 절감에서 비롯됐음이 분명하다.

재생에너지 20% 목표를 달성하려면 그리드 패리티(태양광 발전단가가 화석연료 발전단가와 같아지는 시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정부가 태양광·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 분야에 지원을 해야 한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18대 대선 때도 2030년 20% 공약을 내놓으면서 당시 목표 달성을 위한 투자금액으로 200조원을 제시했다. 무엇으로 이 막대한 지원자금을 충당하지? 후보들은 모두 원전과 화력발전 세제를 개편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전기요금 인상 없이 그걸로 충분할까? 14일 토론회에 정당을 대표해 나온 이들한테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달라”고 따져물었다. 윤종석 더불어민주당 산업통상자원위원회(산자위) 전문위원은 “불편한 진실에 대해 터놓고 얘기할 시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정유훈 국민의당 산자위 전문위원은 “현시점에서 답변하기 어렵다. 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구체적인 정책을) 내겠다”고 했다. 김제남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만이 “전기요금이 원가의 절반 수준인 산업전기 경부하 요금을 올리는 등 전기요금 정상화를 추진하겠다. 국가 및 지역 에너지전환위원회를 구성해 전기요금 인상 계획을 세우겠다”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 12일 국회기후변화포럼이 주최한 19대 대선후보 기후변화·에너지정책 정당 초청 토론회에서 김좌관 문재인캠프 국민성장 환경에너지팀장은 “당장 부족한 전력을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수 없어 가스발전을 할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이 20~30% 인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원전이나 석탄의 사회적 비용을 고려한다면 국민들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지만 공약집에 적시될지는 미지수다.

한국의 전기요금(가정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64% 수준이다. 미국 전기요금은 우리나라의 1.2배, 영국 2.3배, 독일 3.2배, 일본 2.2배 등이다. 전기요금을 올리는 대신 집집마다 미니 태양광발전소를 공짜로 달아준다고 해도 한정된 아파트 베란다 면적에 태양전지를 덕지덕지 달 수도 없으니 요금 인상은 저항을 부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태양전지의 요금 절감 효과에 솔깃해하던 선배한테 “지속가능 발전을 위해 재생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재생에너지 확대가 사실은 요금 인상 요인이에요”라는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신재생에너지 위한 전기요금 인상 설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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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의 위험도 태도와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2000년대 초 프랑스와 스웨덴의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방문 경험이 달랐다. 프랑스 방폐장 관리기관은 취재진 모두에게 휴대용 방사선측정기를 지급하고 우주복처럼 생긴 방호복을 입혀 놓고도 방사성폐기물과 한참 떨어진 지점까지만 접근을 허용했다. 반면 스웨덴에서는 10여명의 그룹에 단 한개의 방사선측정기를 지급하고 맨몸으로 방사성폐기물이 든 드럼에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안내했다. 두 나라 방폐물 기관이 방사선의 위해성을 달리 보아서가 아니라 위험에 대한 태도가 달라서였다고 생각했다.

원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과거에 비해 분명 변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원전 사고와 지난해 경주 지진이 주요 추동력이겠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구석이 있다. 정치한 조사는 아니지만 환경운동연합이 지난 2월27일부터 6일 동안 영화 <판도라>를 본 시민들에게 에스엔에스를 통한 구글 설문지로 간이설문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2909명)의 대부분(97.2%)이 ‘우리나라에서 영화 판도라와 같은 원전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영화 판도라가 현실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노후원전 폐쇄(29.8%), 신규원전 건설 백지화(29.2%), 지진 위험지대 원전 가동 중단·폐쇄(24.1%) 등의 조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원자력발전 홍보기관인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의 ‘2016년 원자력 국민인식 정기조사’에서도 원전의 필요성에 대한 긍정 의견이 사상 최저(78.6%)를 기록했다. 2002년 경주 방폐장 부지가 결정됐을 때 이 항목의 긍정 답변이 95.4%까지 오르고, 후쿠시마원전 사고 다음해인 2012년에도 87.8%에 머문 것과 견주면 원전에 대해 싸늘해진 시선이 느껴진다.

원전에 대한 후보들의 공약이 ‘확대 불가’라는 한 지점으로 수렴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후보마다 결이 미세하게 다르긴 하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똑같이 신고리 5·6호기를 포함해 신규 원전과 석탄발전은 중지하고 노후 원전은 수명 연장도 중단한다고 했지만, 문 후보가 40년 뒤 원전 제로 국가로의 탈원전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한 반면 안 후보 쪽은 탈원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정도다. 심상정 후보가 2040년 탈원전, 2050년 탈석탄의 선명한 목표를 제시한 데 비해 유승민 후보는 원전의 점진적 축소라는 원칙적 입장을 밝히기만 했다. 공약집이나 정책 발표를 통해 에너지 관련 공약을 밝힌 바가 없는 홍준표 후보조차 지역 유세에서 “원전 건설을 지양하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새 정부는 올해 2년마다 수립하게 돼 있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짜야 한다. 탈원전·탈석탄 공약이 공염불이 될지, ‘에너지 혁명’의 테제가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2002년 김대중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해 태양광 등에 대한 기준가격을 고시하고, 기준가격과 화력발전에 의해 결정되는 전력가격과의 차이를 보조해주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도입했다. 가령 기준가격이 100원이고 전력시장가격이 70원이면 차액 30원을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지원해주는 것이다. 소요되는 재원은 전기요금에 3.7%씩 부과해 징수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조달했다. 결국 소비자인 국민이 내는 셈이다.

2011년 이명박 정부는 발전차액 지원금 규모가 늘어 재정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폐지하고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로 바꿨다. 일정 발전설비용량(500㎿) 이상을 보유한 발전사업자에게 전기판매량의 일정 비율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하지만 발전차액지원제도가 폐지되면서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이제는 오히려 남아돌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17년도 전력산업기반조성사업 시행계획’을 보면 올해 전력산업기반기금 수입은 4조1440억원으로 잡혀 있는데 지출은 1조6천억원에 그쳐 여유자금이 2조5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출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보급에 쓰이는 돈은 4500억원에 불과하다. 또 석탄발전사업자들이 수입 우드펠릿(나무 톱밥을 압축해 만든 바이오연료)으로 의무할당을 채우는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우드펠릿은 석탄보다 이산화탄소 증가에 기여가 더 크고 미세먼지 발생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대선 주자들이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재도입하거나 우드펠릿 사용 제한 등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 개선을 공약으로 제시하는 배경이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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